주4일제(혹은 주4.5일제)와 ‘진짜 노동’
한국은 장시간 노동사회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붙어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24년 임금근로자 기준 1,859시간으로 OECD 평균(1,717시간)보다 길고, 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길다. 독일·네덜란드·덴마크·프랑스는 1,400시간 미만이고 미국도 1,810시간이다(통계청, OECD 주요국의 임금근로자 연간 근로시간(2008~2024)).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의 지표이기도 한 노동시간은 1919년 ILO 출범 1호 협약 ‘하루 8시간’을 시작으로 1993년 EU는 ‘건강 및 안전 조치의 일환’으로 ‘주 35시간제’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사회는 근래 주4일제(혹은 4.5일제) 노동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4.5일제를 빨리 도입하고 싶다‘는 대통령의 언급과 더불어 정부는 ‘임금 삭감없는 주 4.5일제’를 청사진으로 내세우고 있다. 법적 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하는 주5일제가 2004년에 도입된지 불과 20여년만에 주4일제(혹은 주4.5일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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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진행되는 주4일제(주4.5일제)
주4일제(혹은 주4.5일제) 실험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해외사례로 대표적인 주4일제 실험은 아이슬란드 주4일제, 프랑스 주35시간제, 벨기에 주4일 선택제, 스페인 주4일제, 유럽 지방정부(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리옹, 영국 사우스케임브릿지셔 디스트릭트)의 주4일제 실험, 미국지방정부 공공부문 주4일제 실험, 그리고 해외 민간부문 주4일제 실험들이다. 국내 주4일제 실험은 언론사(경향신문, 한겨레, 중앙일보)와 출판사(금성출판사, 보리출판사), 제조업(코멕스, 코아드), 유통업(마녀공장, 이피알), 세브란스병원 교대제 간호사의 주4일제 실험, 중소제조업체 코아드의 점진적 주4일제 실험,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시간단축과 주4일제 실험(서울시 시 산하 공공기관, 경기도 민간기업 대상)이 있다. 중소제조업체 코아드의 경우, 시행전 퇴사율 14%에서 1%로 대폭 감소, 입사경쟁률 20:1에서 100대:1로 증가, 연매출액은 2021년 112억원에서 2024년 170억원으로 매년 10~25% 향상하였으며,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져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김종진, 2025).
“주4일제를 경제의 모든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도입 과정에서 일부 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더 많은 장벽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술, 금융, ICT 및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몇 년 안에 주4일제가 자리잡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노동시간 전환의 혜택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입법을 촉진하고, 연구를 수행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김종진, 2025,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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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제 지원에 앞장 선 경기도
국내에서 노동시간 감축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지방정부는 경기도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및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우리 사회 적정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및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주4.5일제 시범사업은 경기도내 민간기업 67개사 및 공공기관 1개소를 대상으로 2025년부터 3년간 시행한다. 주4.5일제의 방식은 주35시간제, 격주 주4일제, 혼합형 등을 노사가 자율선택할 수 있으며 노동자 1인당 월 최대 26만원을 지원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로개선 컨설팅, 근태관리시스템 구축 등 기업당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한다(조상기, 2025).
근로개선 지원컨설팅의 세부 내용(일하는 방식 개선, 임금체계개선, 성과관리 개선, 생산공정 개선, 작업환경 개선 등) 중 참여기업이 선택한 1개 분야에 건설팅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간 단축제도의 성공적 유지를 위한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의 병행으로 보여 주목할만하다. 지원이 끝났을 때 노동시간이 다시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4일제(4.5일제) 시행에 있어 생산성은 주요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노동시간단축과 생산성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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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제(4.5일제)와 생산성
주4일제로 표출된 노동시간 단축의 주요 쟁점 첫째는 일과 삶의 균형이다. 시간빈곤을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출근일을 줄이거나 교통체증시간을 피해 출퇴근하는 방식 등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으며,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 나누기 실천도 주4일제의 주요 쟁점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해결해야 할 주제는 주4일(주4.5일제)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관계이다. 임금삭감없는 주4일제(주4.5일제)를 위해서는 노동시간과 생산성 논의를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의 생산성 또는 생산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근로시간과 생산성에 관한 연구:제조업을 중심으로>(박우람·박윤수, 2015)가 있다. 2000~2012년 중 종사자 수 2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를 분석대상으로 하였고,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 2000~2012년 자료를 사업체 수준에서 연도별로 연결한 종단데이터를 사용하였다. 연구결과, 생산활동측면에서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사업체의 노동투입(종사자 수), 자본투입(실질자본액), 부가가치 산출량은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생산성을 계산할 때 사용한 노동투입량의 단위가 근로시간(man-hour)이 아닌 종사자 수(man)라는 점에서, 종사자 수 기준으로 계산된 생산성에 별다른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연구의 추정 결과는 근로시간 기준으로 계산된 생산성은 향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서 언급한 중소제조업체 코아드도 주4일제로 생산성을 향상한 사례로 꼽힌다. 자동문제조업체 코아드는 2019년 생산직부터 주4일제를 시작했고 우려와 달리 매출과 생산량은 20%가 늘었다. “10% 정도는 인력충원으로 했고 나머지 부족한 10%를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고 모든 회의를 없애”(코아드 대표 / <KBS1>(2025.5.7.) 코아드, 주 4일제로)는 등으로 생산성을 높였다. 코아드 직원들은 주4일제 도입때 생산성 향상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고,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4일을 일하게 되니까 수요일부터 오히려 힘내서 업무를 빨리빨리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 코아드 직원의 말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삶과 일의 방향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충분한 휴식과 몰입으로 생산성을 높이고자 주4일제를 시작한 기업교육전문교육기관 휴넷(2022년 7월부터 주4일제를 선택)은 주 4일제 시행 이후 입사경쟁률은 10배 이상 증가한 반면 직원의 퇴사율은 이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서, 회사를 성장시킬 인재 영입 및 유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유의미한 발표를 내놓았다(<국제신문>(202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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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제(4.5일제)와 ‘진짜 노동’
주4일제 실험 등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사례는 ‘더 짧은 근무시간 동안 이전과 동일하거나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할 필요가 없으며 업무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식인 업무시간을 근거로 그 가치를 측정하고 있다’는 데니스 뇌르마르크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가짜 노동』(2022)에 이어 『진짜 노동』(2025)을 펴낸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기업이 주당 근무시간을 4일로 단축하면서도 여전히 생산성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60분 회의에 제시된 안건들을 45분 또는 35분만 할당되더라도 동일한 만족도와 동일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무시간 길이와 생산성의 관계(OECD 국가들, 1990~2012)’를 보여주는 표는 1인당 근무시간이 짧을수록 근무시간당 GDP가 올라가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아래 그래프 참조). “그래프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전환되면서 더 짧은 근무시간 동안 이전과 동일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데니스 뇌르마르크(2025), 29쪽)는 것이다. 『진짜 노동』의 부제가 왜 ‘적게 일해도 되는 사회,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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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 길이와 생산성의 관계(OECD국가들, 199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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